0년 전,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임신하기 직전이었다.
그때 나는 아직 “공황장애”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던 하루, 부산 근처에서 큰 지진이 났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순간 내 몸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눈앞이 아득해지고, 심장은 폭발하듯 뛰어올랐다.
숨이 막혀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세상이 멈춘 듯했다.
흔들림이 멈췄는데도 몸 안의 두려움은 진정되지 않았다.
심장은 여전히 비명을 질렀고, 손끝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그날 이후,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밤에도 불안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잠이 들면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고,
멀쩡히 있다가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 순간들이 반복됐다.
그때부터 내 삶은 ‘공황장애 극복’이라는 이름의 긴 여정으로 들어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마음속에서는 늘 재난이 재생되었다.
거대한 쓰나미가 도시를 덮치고, 모든 것이 삼켜지는 장면.
그 이미지는 너무도 생생해서, 잠드는 것조차 두려웠다.
🌙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의 시작
지진 이후의 불안은 일상 속에서도 나를 따라다녔다.
운전을 하다 바다 위의 다리를 건너면,
다리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환상이 떠올랐다.
터널에 들어가면 천장이 내려앉아 나를 가둘 것 같았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출구가 없는 세상에 갇힌 듯 숨이 막혔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공황 발작’이라는 신체적 반응이었다는 것을.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데,
내 몸은 실제 위기 속에 있는 듯 반응하고 있었다.
심장은 미친 듯 뛰었고, 손끝이 저리며 시야가 좁아졌다.
그 공포는 설명할 수 없는, 완전히 통제 불가능한 감정이었다.
💭 ‘정상’이라는 말이 주는 혼란
나는 몸이 이상하다고 믿었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병원을 전전했다.
심전도, 혈액검사, MRI까지 —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결과는 늘 같았다.
“정상입니다.”
그 말이 가장 잔인했다.
정상이라는데 나는 도저히 괜찮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마다 터져 나오는 공포,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 조임.
의사들이 말한 ‘정상’은 내 고통을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건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언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나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 깊은 혼란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내가 가장 필요로 했던 건 약이 아니라 ‘이해’였다.
이 모든 것이 왜 일어나는지,
내 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 공황장애, 병이 아니라 ‘현상’으로 이해하기
지인의 권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간 건
그 모든 혼란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였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조용히 말했다.
“이건 공황장애입니다.”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오히려 안도감이 밀려왔다.
누군가가 드디어 내 안의 혼돈을 이름 붙여준 느낌이었다.
공황장애는 병이라기보다,
우리 뇌가 위험을 잘못 감지해 울리는 ‘비상 경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나는 위험한 상태에 놓인 게 아니라,
그저 ‘위험하다고 믿는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 인식 하나가 내 삶을 바꿨다.
🌸 약물 대신 ‘이해’를 통한 치유
당시 나는 임신 중이었다.
약물 치료는 선택할 수 없었고, 대신 상담과 공부를 시작했다.
의사는 말했다.
“공황은 없애야 하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겁니다.”
그 말이 내 회복의 출발점이 되었다.
공황 발작이 찾아올 때마다
‘아, 이건 내가 죽는 게 아니라 뇌가 경보를 울린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연습을 했다.
두려움을 억누르려 하기보다,
그 감정을 그대로 지켜보는 훈련이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두려움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 공포가 점점 힘을 잃었다.
이해는 약보다 강력했다.
🌷 감정을 배우고, 마음을 훈련하다
그 후 나는 매주 공황에 대해 배웠다.
왜 과호흡이 일어나는지,
왜 그 순간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지를
하나씩 공부했다.
‘아는 만큼 두려움이 줄어든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몸의 반응을 이해하자,
그동안의 공포가 조금씩 논리로 바뀌었다.
공황은 여전히 찾아왔지만,
이제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그래, 또 왔구나. 하지만 나는 괜찮아.”
그 한마디가 나를 구했다.
🌿 회복의 원동력
세 달쯤 지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예고 없이 몰려오던 공포의 파도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터널을 지나도, 다리를 건너도
이제는 가슴이 그렇게 뛰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나를 지탱해 준 건 ‘이해’와 ‘의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뱃속의 아이가 내게 주었던 강력한 생의 에너지였다.
“이 아이를 지켜야 해.”
그 마음 하나가 공황보다 더 강했다.
공황장애 극복은 단순히 증상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두려움이 와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다.
이제 나는 안다.
공황은 나를 파괴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 시간이었다는 걸.
💫 맺음말
공황장애는 ‘끝’이 아니라 ‘메시지’다.
우리의 마음이 너무 오랫동안 긴장해 있었음을 알려주는 신호.
그래서 나는 이제 공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감정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나 알고 있어.
이건 나를 지키기 위한 신호일 뿐이야.”
이해는 두려움을 이긴다.
그리고 그 이해는 결국,
우리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