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로 예민한 아이: 5년의 불면과 기다림 끝에 찾은 부모의 마음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알았다.
이 아이는 “극도로 예민한 아이”였다.
세상에 조금 더 섬세하게, 조금 더 깊게 반응하는 아이.
빛에도, 소리에도, 낯선 온기에도 쉽게 긴장했다.
나는 그걸 단순한 ‘성격’이라 여겼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까다로움이 아니라, 감각의 세상이 너무나 풍부한 아이였다.
그 풍요로움은 아이를 힘들게 했고, 나 역시 그 세계를 함께 감당해야 했다.

나 또한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육아는 내 한계와 아이의 한계가 맞닿은 지점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시간이었다.
첫 아이였기에 ‘다들 이렇게 힘든가?’라는 질문조차 던질 여유가 없었다.
백일이 지나고, 돌이 지나고, 두 돌이 지나도 아이는 잠들지 않았다.
밤마다 깨서 울었고, 잠이 들면 다시 악몽을 꾸었다.
우리의 밤은 다섯 해 동안 이어진 긴 긴장 상태였다.

남편과 번갈아 밤을 지새웠다.
어떤 날은 이유 없는 울음이, 또 어떤 날은 “다리가 아파”라는 절규가
우리의 새벽을 깨웠다.
수면장애인가, 성장통인가, 심리적인 문제인가.
병원을 전전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모호했다.
“조금 더 지켜보세요.”
하지만 그 ‘조금 더’는 너무 길고 고됐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잠을 잤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내 마음은 닳고 닳아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의 예민함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세상의 자극을 너무 깊게 받아들이는 감각 과부하의 결과였다.
그 감각은 밤에도 멈추지 않았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유식의 입자가 조금만 굵어도 아이는 헛구역질을 했다.
고기를 삼키지 못했고, 새로운 질감의 음식은 늘 거부했다.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급식 수저를 새것처럼 들고 올 만큼
감각의 예민함은 여전하다.
옷의 태그, 양말의 이음선, 머리끈의 압박감 —
세상의 모든 ‘조금 불편한 것’이 이 아이에게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아이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
매우 예민한 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한마디는 나를 울게 했다.
‘드디어 이름이 생겼다.’
내가 잘못 키운 게 아니었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이 아이는 조금 더 많은 세상을 느끼는 아이였을 뿐이었다.


🌿 예민함을 고치려 하지 말고, 이해하기

처음엔 ‘이걸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예민함은 병이 아니라 기질이다.
그리고 그 기질 속에는 특별한 힘이 숨어 있다.

이 아이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사람의 표정과 분위기를 누구보다 빨리 읽는다.
그 민감함은 예술적 감각이 되기도 하고,
깊은 공감 능력으로 자라나기도 한다.

예민한 아이의 까다로움 뒤에는
섬세함, 관찰력, 배려심이 숨어 있다.
부모가 그 장점을 먼저 봐줄 때,
아이는 자신의 기질을 ‘결함’이 아닌 ‘특성’으로 받아들인다.
그게 자기 수용의 시작이다.


💬 혼자 감당하지 말기, 도움을 요청하기

나는 오랫동안 이 아이의 예민함을
오로지 ‘엄마의 인내력’으로 버텨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인간의 신경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지속적인 긴장은 결국 부모를 병들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도움을 받았다.
심리상담센터에서 아이의 기질 검사를 받고,
감각 통합 치료를 병행했다.
전문가의 말 한마디 — “이건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신경의 특성입니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죄책감이 사라졌다.

전문가의 도움은 아이만을 위한 게 아니다.
그건 부모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 나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된다.’
그 안도감이 다시 아이에게 안정감으로 흘러갔다.


🌙 다가올 사춘기, 미리 준비하기

예민한 아이의 사춘기는 폭풍 같다.
감정의 파도가 더 높고, 말은 더 날카롭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부모가 함께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아이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질 때,
부모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그건 말보다 강한 메시지다.
“감정은 흘러가지만,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측 가능한 환경이 중요하다.
사춘기의 변화를 미리 알려주고,
몸과 마음의 변화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임을 설명해 주자.
그 예고가 아이의 불안을 줄여준다.


🩶 부모의 에너지를 먼저 채우기

예민한 아이의 부모는 늘 긴장 상태다.
작은 울음에도, 낯선 자극에도 곧장 반응해야 하니까.
그러니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사람은 부모다.
나의 신경계가 안정되어야 아이의 신경계도 진정된다.

하루 중 단 10분이라도 좋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거나, 잠시 창문을 열어 바람을 느껴보자.
그 시간이 부모의 숨을 돌리게 한다.
아이의 폭풍 같은 감정 앞에서도
부모가 흔들리지 않기 위한 ‘내적 평온’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가장 큰 위로는
“괜찮아”라는 말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부모의 표정이다.
그 안정감이 아이의 세상을 안전하게 만든다.


🌾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너무 유난스러워.”
“그냥 단단하게 키워.”
이런 말들은 칼날처럼 부모의 마음을 벤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그 말들은 아이를 모르는 사람들의 언어일 뿐이다.

우리 아이는 단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세상을 느끼는 존재다.
그 속도를 존중해주는 것이 진짜 양육이다.

남들이 보기엔 느려도,
그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
그걸 믿는 부모의 마음이
아이가 세상을 신뢰하게 만드는 첫 출발점이다.


이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예민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세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어 배우는 일이다.
그 느림 속에서 사랑이 깊어진다.
그리고 나는 그 느림 덕분에
내 안의 섬세함도 함께 자라났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혹시 매일 아이의 감정 곁에서 지쳐가고 있다면
부디 이 말을 기억하길 바란다.
당신은 부족한 부모가 아니다.
그저 아주 특별한 아이와,
조금 더 깊은 세계를 함께 여행하고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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