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의 탄생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다.
하지만 그 축복의 뒤편에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나 역시 아기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벅찬 감동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러나 그 벅참은 오래가지 않았다.
출산 후 밀려온 감정의 폭풍은 나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나는 분명히 “산후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깊은 터널 속에 있었다.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끝없는 공허와 절망이 매일을 잠식했다.
이제는 그 터널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걸어 나온 한 엄마로서 이 글을 쓴다.
혹시 지금 그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기록이 작은 등불이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 예기치 못한 시작, 예상 밖의 고립
임신은 기쁨과 동시에 낯선 불안의 연속이었다.
입덧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고, 몸은 늘 무겁고 둔했다.
게다가 그 시기에 겪었던 지진으로 인한 공황 증세는 나의 불안을 극도로 키워놓았다.
겨우 버텨낸 열 달이었지만, 진짜 시련은 출산 이후였다.
우리 세대는 집안일보다 사회생활에 익숙한 세대였다.
첫 아이를 낳고 마주한 빨래, 설거지, 청소 같은 일들은 하나같이 서툴렀다.
그 미숙함 속에서, 예민한 아기의 울음은 나를 점점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누구에게도 미안했고,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나는 분명 엄마가 되었는데, 그 이름이 주는 행복보다
‘잘하지 못하는 나’라는 죄책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 5년 동안의 수면 부족, 그리고 끝없는 피로
산후 우울증을 키운 건 다름 아닌 잠 부족이었다.
보통 백일이 지나면 통잠을 잔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아이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밤새 잠든 적이 없었다.
밤마다 수없이 깨어 울었고, 그때마다 나는 달래고, 업고, 안고, 다시 눕혔다.
새벽이면 온몸이 굳어 있었고, 거울 속 내 얼굴은 늘 붉고 지쳐 있었다.
아이의 식사량도 적었다.
이유식을 세 숟가락 먹고는 끝이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거의 24시간 내내 조금씩 먹여야 했다.
내 하루는 철저히 아이의 리듬에 맞춰져 있었고,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갔다.
그 사랑스러운 존재가 어느 순간엔 버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가 너무 미웠다.
💭 공감 없는 말들이 만든 외로움
가장 힘들었던 건 주변의 무심한 말들이었다.
“다 그런 거야.”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그 말들은 칼처럼 날카롭게 내 마음을 베었다.
내 고통을 설명할수록 오히려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어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입을 닫았다.
조용히 울고, 조용히 아이를 돌보고, 조용히 버텼다.
남편은 내 유일한 버팀목이었지만, 그 역시 지쳐 있었다.
나의 우울함, 아이의 예민함, 밤낮 없는 피로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했다.
“내가 엄마가 되면 안 되는 사람이었을까.”
🌷 손을 내밀기까지의 시간
어느 날,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병일지도 몰라.”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조금씩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아픈 게 아니라, 지친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인식이 회복의 첫걸음이었다.
🌼 완벽한 엄마라는 환상을 버리기
나는 ‘좋은 엄마’라는 이름에 너무 매달려 있었다.
집이 조금만 어질러져도, 아이가 울면 내가 잘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깨끗한 집보다 평온한 엄마의 얼굴이 아이에게 더 중요하다는 걸.
그래서 내려놓았다.
하루쯤은 집안일을 미뤄도 괜찮았다.
조금 울게 놔둬도 괜찮았다.
엄마가 잠시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아이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라는 걸 깨달았다.
남편과 솔직히 이야기하며 가사를 나누고,
나만의 짧은 산책 시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작은 여유들이 내 일상에 숨통을 틔워주었다.
🌻 주변에 솔직해지기
이제는 숨기지 않았다.
남편에게도, 친구에게도 “나 요즘 많이 힘들어”라고 솔직히 말했다.
처음엔 그 한마디조차 쉽지 않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내 마음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졌다.
남편은 내가 가장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 주었고,
그의 지지 덕분에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외부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찾았다.
아이 돌봄 서비스, 가족 상담, 지역 육아 지원센터.
도움을 구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살아남기 위한 용기였다.
🌙 터널 끝의 작은 빛
산후 우울증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매일 조금씩 나아졌다.
내가 나를 탓하는 대신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
불안과 분노는 서서히 힘을 잃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잘 버텼다.”
혹시 지금 그 터널 한가운데에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당신의 고통은 결코 유난이 아니다.
당신은 부족한 엄마가 아니라, 끝까지 버티고 있는 용감한 사람이다.
당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빛은 찾아온다.
💫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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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버티지 말고, 누군가에게 꼭 이야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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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이는 평온한 엄마를 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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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햇볕을 쬐며 숨 고르기를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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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닌 ‘나’로 존재하는 시간을 잊지 마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결국에는 그 터널을 지나 따뜻한 빛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